소개할 영화
엘리멘탈(Elemental)
주관적인 리뷰
Steal The Show
<엘리멘탈>은 그야말로 MZ세대들이 삶의 방향을 찾아가는 영화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은 가부장적인 것에 매여있기도 하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좇고자 하기도 한다. 이 고민은 어느 세대들이나 똑같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문제다. 더욱이 우리와 같은 동양권의 장녀들에겐 너무나도 공감되는 소재다. K장녀 앰버라고 불리기도 할 정도로 앰버는 한국의 장녀들의 모습과 유사하다. 그나마 앰버가 다행인 것은 남동생이 없다는 점이라 해야 하나. 하지만 그녀는 이민자 2세대로, 부모세대들은 인식 못 했을 제노포비아들의 시선도 감지했을 세대다. 여러모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였을 세대, MZ세대다.
가족과 부모의 부흥에 따를 생각만 하지 자신의 꿈은 생각도 못 해보고 자라는 모습. K장녀들의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 그러면서 어떠한 계기로 웨이드를 만나 자신의 꿈을 알아가는데 이 과정이 너무나도 다행스러우면서 보는 내내 울컥했던 장면이 한 둘이 아니었다. 앰버에겐 새롭지만 웨에드에겐 당연했던 것들 이런 것들은 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을 훔쳤던 것 같다.
부유하게 자라나 자신의 원하는 것은 하고야 말고, 떳떳하고 안전한 직장, 부유하고 미적 감각이 넘치는 가족들. 그야말로 행복의 울타리라고 불릴 수 있는 곳에서 자라난 웨이드.
이민자 2세대로 은근한 차별도 감지할 수 있는 세대. 부모 세대는 영문 몰라 웃어넘길 수 있지만 그것이 불편한 세대가 그들의 2세다. 그게 바로 앰버고, 앰버의 아버지는 그런 문화권 속에서 떳떳하게 앰버를 기르려고 노력한 엘리멘탈, 불이다.
무리에 환영받지 못 해 자신들의 마을을 만들어 유지해 나가고 그들끼리 교류하는 무리. 이민자들의 무리고, 불의 무리다. 앰버는 이러한 불의 무리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아버지의 말은 다 옳은 것으로 여기고 아버지를 가장 존경하며 커왔다.
사실 그녀는 웨이드를 만나가 전까지 아버지의 가게를 물려받는 것이 자신의 꿈인 줄 안 채로 살아갔을 터이다. 웨이드의 등장은 그만큼이나 그녀 인생에 있어선 지구를 향해 내리꽂는 소행성과도 같은 존재다. 웨이드 덕분에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가고, 알아간다. 그리고 여직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지 못했던 자신에게 화도 내고, 그것을 알게 만들어준 웨이드에게도 화를 내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너무나도 마음이 쓰리다. 원하는 바를 찾았지만 그것을 이루려면 가족을 내려놓는다라는 감정과 비슷한 아픔을 느끼는 그녀. 처음으로 가족 외에 자신만을 생각한 것을 가족에 대한 배신이라 생각하고 괴로워한다.
어쩌면 누군가에겐 당연할 자기 자신 챙기기를 그녀는 너무나도 혼란스러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이 자주 비춰진다. MZ 세대들이 겪을 모습이기도 하지 않을까. 물론 MZ세대들 이전 사람들도 이런 방황은 했을 것이다. 사실 MZ의 범위가 꽤나 넓은 걸 알고 쓰는 글이기도 하다. 겨우 걸쳐서 나의 세대기도 한 MZ세대들은 빠른 흐름에 자기 자신이 원하는 걸 찾기도 전에 부모나 가족으로부터 쥐어진 사명이 있는 세대들이 아닌가 싶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내가 원하는 건 사라지고 사명만 남아 가족의 옆에 남아있는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그렇다고 가족을 사랑하진 않는건 아니지만, 원하는 바를 놓치고 겉거죽만 남아 사명만을 쥐고 결국엔 가족을 탓하는 비극적인 모습까지 우리는 주변에서 많이 보지 않았는가. 아님 이미 겪었을지도 모른다.
다행이도 엘리멘탈은 그런 비극적인 모습까진 보이진 않는다. 웨이드라는 캐릭터 덕에 앰버는 더 빨리 가족이 원하는 바와 자신이 원하는 바를 빠르게 분리하고, 아버지에게 사과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아버지의 가게를 이어가는 것이 아니었다고. 사과하면서 펑펑 우는 앰버를 그의 아버지 아슈파는 그녀를 끌어안아주며 네가 원하는 게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 말해준다.
이 장면에서 울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아니 굳이 장녀가 아니더라도 누구든 눈물 찔끔하지 않았을까 한다. 이 장면은 앰버에게 있어 삶의 변화구를 던지는 장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행이도 디즈니와 픽사 영화에는 행복한 결말만이 있다. 앰버를 인정하고 받아주며, 나아가라 해주는 그녀의 가족들을 보면 말이다.
큰 고난 끝에 아슈파에게도 승낙을 받은 웨이드는 앰버와 도시로 떠나가는데, 여기서 앰버의 모습에 또 한 번 펑펑 울고 마는 장면이 생긴다.
아슈파가 젊을 적 자신의 마을을 떠나 지금의 도시로 이민올 적에 아버지에게 받지 못 한 절을, 그는 자신의 딸을 통해 받게 된다. 마을을 떠나는 것을 못마땅하게 했던 자신의 아버지와 다르게 그는 앰버를 위해 맞절을 해준다. 축복을 빌어주며. 정말 양쪽에게 다 아름다운 이별과 성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결론
이 영화는 아닌 듯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엉엉 울기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앰버만의 고민이 아니라 전세대간의 문제기도 한 정말 복잡하고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는 영화다. 앰버에게 부담이 될 만큼 열심히 살아온 그의 부모세대가 그렇다고 앰버에게 어떠한 삶을 강요한 것은 또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것이 최선이라 생각하고, 2세들에게 제일 좋은 자리라 생각해서 마련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자리가 그들에게 족쇄처럼 자리 잡으라고 마련한 자리가 아니라는 게 더 마음이 아프고 슬프다. 그들 세대들에겐 그것이 최선이었고 제일 좋은 자리기 때문에 2세들에게 자연스럽게 건넸던 것이었다.
그리고 2세들은 어렸을 적부터 그것이 제일 좋은 것이라 보며 컸기 때문에 아무 거리낌 없이 이를 이어받거나, 혹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찾아 다른 것을 하겠다 하는 과정에서 보통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부모세대들은 다 닦아놓은 길 위를 걷기만 하면 되는데 괜한 모험을 하려는 자식세대가 불안한거는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전폭적인 지원이 힘든 가정에서는 더욱이.
원래가 그렇다. 전폭적인 지원이 가능한 집안의 아이들은 이것저것 해보는 것이 가능하지만, 그렇지 못한 가정의 아이들은 한 번의 실패가 너무나도 큰 추락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것을 그들의 부모는 모를 리 없기때문에 대개 부유하지 못 한 가정에서 부모의 가업을 이어받을지 다른 것을 할 지에 대한 갈등이 크다. 실패는 곧 추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에선 그 갈등의 과정이 길게 나오지 않아 너무나도 다행으로 여겨졌다. 갈등의 깊이가 좀 더 깊었더라면 너무 현실적이어서 영화 보기가 숨이 턱턱 막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됐든 디즈니와 픽사의 애니메이션 영화 <엘리멘탈>은 지금 우리 모두의 세대가 갖고 있을 갈등을 표면적으로 끌어와 조심스럽게 다듬어낸 작품이라 생각한다. 이는 어느 세대에 걸쳐 고민해 볼 만한 거리이다.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는 일이지만, 미래에도 있을 일이다. 너무 뻔하지만 한 번쯤 화자 됐어야 할 주제임은 틀림없다.
이야기에 악역이 없기때문에 더욱이 그렇다. 사람과 사람 간의 갈등 누군가 나빠서 생기는 갈등이 아니기 때문에 영화 <엘리멘탈>은 영화를 보는 동안도 그랬지만 보고 나서도 생각할 거리를 참 많이 남기는 영화 같다.
혹여 이 영화를 단순 러브스토리 정도로 생각하고 안 봤을 사람이 있다면 다시 생각하라고 하고 싶다. 이 영화는 사랑이야기로 끝날 수 없는 이야기다. 봐서 후회할 일은 절대 없다고 자신할 수 있다.